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6.25 전쟁/전쟁의 전개 (문단 편집) === 기갑 === 개전 당시 국군의 기갑장비는 [[M8 그레이하운드]] 장갑차밖에 없었고 그나마도 흥남철수작전에서 파괴된 M8 그레이하운드 장갑차를 마지막으로 사실상 씨가 말랐다. 정부에서는 국군이 직접 전차를 운용하게 하기 위해서 경상남도 동래군에 위치한 육군종합학교에 전차과를 설치하고 전차병들을 양성하기 시작했다. 전차병이 워낙 부족해 [[소년전차병]]을 모집해 부족한 인원수를 채워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인원이 아니라 전차였다. 당시 우리나라 상황에서 전차를 생산한다는건 불가능했으므로 전차를 다른 나라로부터 원조받아야하는 입장이었고 이걸 해줄 수 있는 나라는 미국뿐이었다. 하지만 미국 또한 미군이 사용할 전차도 수량이 빠듯해서 전차 지원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급한대로 지원받은게 [[M36 GMC]] 대전차자주포였다. 이 자주포는 주포의 위력에서만큼은 [[M26 퍼싱]] 전차나 [[M46 패튼]] 전차와 동급이었다.[* 만들어진 시기는 잭슨이 먼저다. 포의 위력을 잭슨에서 확인해 두 전차에도 탑제된 거다.] 다만 방어력이 떨어지고 오픈탑식 포탑이라는 약점이 있었다. 일단 북한군의 주력전차인 T-34는 유엔군의 공격으로 괴멸되었고 중국군 개입 후에는 전차들 간의 전면전이 펼쳐지지 않아 위험요소가 그렇게까지 높지 않아서 M36 잭슨이 지원되었다. 교육용으로 처음에는 M36 잭슨 전차를 도입했는데 원래 분류는 대전차자주포지만 국군에선 경전차로 분류했으며 처음에 6대가 도입되었고 추가도입이 계속돼서 대한민국 최초의 전차부대인 51, 52 전차중대를 창설하고 소년전차병으로 이루어진 57 전차중대를 창설했다. 총 9개 전차중대가 창설되고 각 중대는 당시 미국 전차중대 편제기준으로 [[M36 GMC]] 구축전차 22대, M32 [[구난전차]]를 1대씩 배치했다. 198대의 [[M36 GMC]] 구축전차를 9개 전차중대로 편성한 뒤 3개 전차중대를 엮어 3개 전차대대를 편성하여 각 대대당 66대의 M36을 보유했다. 잭슨 전차는 비록 완벽한 전차로 보기는 힘들었지만 국군 최초의 대전차무기 장비 차량으로 전선에 있는 국군의 사기를 높이기에는 충분했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총 216대를 지원받았다. 그외에도 [[M24 채피]] 경전차를 1개 중대급으로 교육용으로 도입했는데 전쟁 초반 T-34에게는 상대가 안되던 그 전차가 맞다. 일단 교육용으로 도입됐기에 전차병 양성에 큰 도움이 되기는 했지만 2~3개월 뒤 대만으로 넘어갔다. 해병대의 전차도입이 육군보다 빨랐는데 해병대는 [[M4 셔먼|M4A3E8 셔먼]] 전차를 1개 중대급으로 도입했다. 76.2mm 주포에 신형 철갑탄을 사용하면 T-34를 격파하기에는 충분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뒤 1954년 상당수의 미군이 철수하면서 총 388대의 M4A3E8이 국군으로 넘어오고 M36 잭슨 구축전차 216대를 포함해 총 604대의 전차를 보유하게 된다. 그 외에 [[치하|치하 개량형]]과 [[크롬웰 전차]]도 노획한 뒤 아주 잠시동안 운용한 경력이 있다. 치하 전차는 공산당측에서 노획하거나 한국 내에서 일본군이 철수하면서 방치된 걸 고쳐서 운영한 것으로 보이며 이 중에서 북한군에게 재노획된 것도 있어서 존재가 드러났다. 크롬웰 전차는 북한군과 중공군이 영국군으로부터 노획한 것을 다시 노획한 것이기에 영국군이 전차 위치를 파악하자마자 다시 회수해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